교황 그 무거운 이름
현세의 삶을 포기하고 종교에 헌신하는 직업이 있다. 기독교에선 목사, 불교에선 주지스님, 가톨릭에서는 교황이라고 불린다. 이 영화는 카톨릭계의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13년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인데, 처음엔 이탈리아 언어가 어색하게 느껴졌는데 보다 보니 심리적 갈등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시놉시스와 영상미가 탁월하다고 느꼈다. 영화 제목을 들었을 때는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아무래도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기에 우스꽝스러운 내용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긴 러닝타임이었는데도 보는 내내 인간미가 느껴지는 추기경들의 유쾌한 스토리 덕에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순수한 코미디 영화는 아니다. 코미디 요소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한 철학적인 메시지와 함께 종교적인 메시지가 같이 들어갔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인 바티칸 성당에서 전임 교황이 죽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자리가 만들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찾아본 내용에선 교황을 뽑는 방식엔 총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발성에 의한 결정이다. 입으로 말함으로써 선출하는 방식인데 이 방식은 모두 만장일치로 추기경의 이름을 동시에 말할 때만 적용된다고 한다. 두 번째 타협에 의한 결정, 세 번째가 영화에 나오는 투표에 대한 결정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 명예로운 교황이라는 자리에 어느 누구도 교황이 하고 싶지 않아 했다. 투표를 하기 위해 모인 추기경들은 마음속으로 자신만은 제발 아니길 기도를 드리고, 과연 누굴 뽑았을까 식은땀을 흘리면서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이 장면은 종교에 헌신하는 추기경들도 인간미 있는 한 인간으로 보여준다. 차마 안쓰럽기까지 보이는 그 과정에서 드디어 새로운 교황이 선출됐다. 새로운 교황으로 된 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함을 친다. 어느새 성스러운 자리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교황이 하기 싫은 이유로 초조한 모습을 보이던 주인공 멜빌이다. 사실 멜빌은 교황의 자리에 자신이 될 것이라고 상상도 못 했었다. 신실한 추기경들을 제치고 왜 자신이 뽑혔는지 의아할 따름이지만, 역시나 자신은 교황이 되기 싫다. 급기야 교황의 자리를 비워두고 성당을 뛰쳐나가기까지 한다.
교황도 인간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건강상의 문제로 퇴위하고 2013년 3월 13일 제266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됐다. 이때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전 세계에서 즉위 미사에 관심이 쏠리고 뉴스는 생중계로 중계했다. 그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장면은 종교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한 번쯤은 관심을 가질만한 장면이었다. 마치 천사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아름다운 성가대의 노랫소리가 울리고 미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얼굴엔 기도로 내 모든 근심이 씻겨 나가길 소망한다. 그러나 영화 중 교황으로 선출된 멜빌은 모두의 관심이 쏠리고 자신의 말 한마디를 함부로 내뱉지 못하는 교황이란 자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그는 알았을 것이다. 엄청난 중압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는 한낱 인간일 뿐이고 교황이란 자리는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톨릭이라는 배경을 빼고 보면 이 영화의 주된 스토리는 한 노인에게 버거운 일이 맡겨지는데 회피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내용으로 생각된다. 그 위에 가톨릭이라는 소스가 입혀져 조금 더 근엄한 성직자의 지위가 생겨났다. 영화에서 나오는 멜빌의 어렸을 때의 꿈은 배우라고 나온다. 이 말에 영화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맞다, 그들도 인간이다. 가톨릭에 헌신하기 전 추기경이 되기 전 그들은 모두 꿈과 희망이 있었던 한 사람에 불과했다. 성당에서 도망친 멜빌은 한 정신분석가를 만나는데 부모 애정결핍증이라는 진단을 받는다. 그리고 자신의 직업은 배우라고 말한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배우였다. 지독하리만큼 재능이 없어 그만뒀었는데도 그는 항상 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이 장면에선 성직자들도 한낱 인간이라는 사실이 보인다. 그리고 성당 안에서 추기경들이 배구시합을 하는데 그 장면이 너무 귀여웠다.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처럼 웃으며 놀이를 하는 그들이 너무 해맑아 보였다. 한 없이 진지하고 무거운 줄만 알았던 이 영화는 많은 생각을 가지게 한 좋은 작품이었다. 성직 자건, 대통령이건, 필부의 아낙들이건 우리 모두 같은 인간일 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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